[칼럼] 말씀에 의지하는 삶이 너무 감사하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장성각기자 | 기사입력 2019/07/10 [07:10]
▲ 이관  칼럼

히브리서 제 11장 1절에 대하여 마음을 나눠보자.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음에도 마음에 담고 기도하고 그 기도를 하나님이 이미 이루어 놓은 쪽의 삶으로 마음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허상에 현혹되어 실상을 엉뚱하게 현실에 금방 나타나야 하는 쪽으로 마음이 빼앗겨 있는 사람들을 본다.

 

매일 기도를 하고 또 기도하고 간절함이 있다고 하나 이루심을 믿지 않는 불신이 있다. 왜? 마가복음 11장 24장.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를 한다면서 기도에 응답할 것을 믿는 삶이 아니라 육신에 근거한 애매모호(曖昧模糊)한 생각의 노예 생활에 익숙한 신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들 모두 우리의 행위에 마음이 빼앗겨 진작 믿고 의지해야 할 예수님이 세상의 모든 죄를 씻어놓으신 것을 받아들임으로 구원을 얻은 의인임을 잊고 무의식중에 습관화 된 내가 주인인 삶이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형편이야 어떠하든지 말씀을 믿는 믿음가운데 마음이 견고하게 서 있으면 하나님이 그 믿음대로 분명히 열매를 주시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창세기 시작부터 말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이 혼돈하고 공허한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어떠한 것을 마음을 채워도 늘 공허하고 만족이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없는 마음은 돈을 벌어도 공부를 열심히 하여 지위를 얻어도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에 살고 마음에 맞는 아내를 얻어 정답게 산다 할지라도 순간은 즐거울 수 있겠지만 결국은 여전히 그 마음은 혼돈하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일시적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돌아보면 남는 건 허망함뿐이다. 창세기 시작부터 하나님이 말씀으로 이루시는 세상을 마음에 그대로 받아들이면 형편을 떠나 마음으로 승복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만나는 은혜 속에 있게 된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신앙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시작이 되어야 참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사했다는 믿음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기본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말씀(성경)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근본부터 확신이 없는 어정쩡한 가운데 즉 예수님의 공로를 믿지 않는 상태에서 무엇인들 기도한다고 이루는 지는 것이 있겠는가?

 

참으로 마음의 세계는 신비(神秘)하여 상상을 불허한다. 결코 자기 스스로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이 이끌어 주어야 온전할 수 있는 세계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인간의 생(生) 과 사(死), 희로애락(喜怒哀樂)이 하나님이게 달려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하나님으로 시작하는 삶을 가져보자.

 

“말씀만으로 시작하는 믿음”은 마음이 말씀에 고정되어서 마치 벽에 박힌 못과 같이 어느 누구도 뺄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성령으로 인(印)쳐져서 그 부분에 마음이 정착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에 정착되어 있을 때는 형편에 따라 변하지만 말씀 속에 정착되어 있으면 불변이다. 감정, 기분은 종잡을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는다. 말씀만을 의지하는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다.

 

나의 경우를 비쳐보면 가장 어려운 점이 내가 비어지지 않는 점이었다. ​비어져야 주님으로 채울 수 있는데 나라는 요물(악마)이 십자가에 달려 예수님과 같이 죽었음을 잊고 수시로 내가 살아 주인 노릇을 함을 본다. 이 세상에서 마음보다 빠른 세계가 있을까? 순간이란 단어로도 마음의 빠름을 설명하거나 예측할 수가 없다. 수시로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수시로 여행하는 세계는 측량이 불가능하다.

 

​하루에 수십 채의 집을 짓고 상상의 나래를 달고 제어(制御)가 불가능한 세계이다. 마음은 다만 “말씀” 만으로 다스릴 수 있는 세계이다. 말씀만이 나를 이겨준다. 다행인 것이 인간은 피조물이기에 다스림을 받았을 때 가장 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글로 적어 표현 했지만 다시 한 번 적어 본다.

 

우린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많은 사람들) 정말 신앙생활을 적당하게 자기기준으로 한다. 자기를 부인하지 아니한 상태에서도 막연히 교회에 나가고 예수님을 찾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려 하니까 자신의 지식과 함께 갈등을 하고 아담의 후손인 선악과를 따서 먹은 악의 종자인 상태에서 자기가 주인인 자신의 기준인 지혜로 판단하며 자기 입맛의 신앙을 하는 우(愚-어리석음)를 범하고 만다. 정말 내 생각을 부인하고 말씀(성경)만을 의지하는 삶에서 떠나있는 것이다. 말씀만을 정확하게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역사한다. 분명한 건 말씀(성경-하나님)에 힘이 있기에 말씀과 내가 한 마음일 때 성령이 힘 있게 역사하여 모두를 이루신다.

 

모든 것을 주님께 넘기고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 구원(救援)이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고 내 인생이 하나님께 맡겨 젖을 때 제일 행복하고 하나님이 하심에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심을 믿는 삶, 믿음으로 하나님께 던지는 삶, 성경에 의지하는 곧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眞實)인 하나님의 일하심에 기대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나라는 자가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자가 되면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삶으로 안착하여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다.

 

한 번 더 강조하면 선, 악의 판단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느냐 내 생각에 이끌리느냐? 믿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서 나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질 때 하나님이 일 하심의 은혜를 입게 된다. 성경은 예수님의 모든 것이고 안식일의 참 뜻도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쉼이 있는 것이다. 인도 받는 삶,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 얼마나 편함을 굳이 설명이 필요가 없다.

 

아브라함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곳을 현지에 가서 살펴보면 비옥한 땅이 아니라 황폐하기 그지없는 땅이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다른 진정한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환경이 어떠한가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시고 책임지고 이루시는 범위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되었다. 출애굽기에 보여준 교훈처럼 황폐한 광야였지만 만나와 메추라기로 충분하게 그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셨다. 소망이 하나님께 있을 때 문제가 문제로 나타나지 않고 꿈과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판단하는 기준을 완전하게 무시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묻어나는 세계로 마음을 옮기자. 모든 것의 시작은 예수님의 공로로 값없이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겨 진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마음이 죄에서 해방되어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는 하나님과 합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젖는 행복의 나라에 있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제 2장 24절-25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24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 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25절).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예수님께로 옮겨진 삶이 복되다. 말씀에 의지하는 삶이 너무 감사하다.

장성각기자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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