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이관] 말씀과 하나가 되면.

장성각기자 | 기사입력 2019/05/24 [08:50]

[이관] 말씀과 하나가 되면.

장성각기자 | 입력 : 2019/05/24 [08:50]
▲ 이관 본지 부사장    

이사야 제 40장 31절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신앙은 조율이다. 말씀과 마음이 합해지는 것이다. 합해 진다는 것은 내 생각이 부인되고 말씀에 순응하는 더 나아가 복종하는 것이다.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 예수님의 피로 온전케 된 자신을 바라보고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옮겨진 상태로 시작하는 신앙이 되길 간절히 기원하며 이글을 올립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장 9절). 무익하고 못난 자, 내가 부인되는 것에서의 시작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

 

시편 제119편 56절-57절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라(56절).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57절). 주님은 사랑입니다. 우리를 위해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로마서 제 10장 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신앙의 시작은 예수님의 은혜로 “죄 사함”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반드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공로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의 본체(本體)이다.

 

하나님은 악인을 멀리하시기에 예수님께서 가교 역할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냐! 로 시작하는 우리의 삶이 기쁨이요 진정한 값어치이다.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다는 것은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믿음의 근거는 말씀이다. 우리는 생각이라는 관념에 익숙해 있다. 나를 버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삶에서 추구하는 소유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아야 한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 말씀을 듣고 또 하나님의 종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하고 값어치가 있는 것이 있을까?

 

마태복음 제5장 말씀에서 복이 있는 사람에 대하여 뜻하는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답답하고 부족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 해결점을 찾기에 분분할 때 모든 것을 가진 하나님이 함께 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것을 가르치는 말씀이 제5장 말씀인 것이다. 또 우리를 부르는 말씀이 있다. 마태복음 제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말씀하고 계신다. 얼마나 깊이 있는 감사한 말씀인가! 나를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내 생각의 노예에서 벗어나 마음에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면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세계에 속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항상 하나님 앞에 서있다는 사람임을 인식한다면 어떤 것에 두려움이 있겠는가. 담대히 주님의 이끄심에 젖어보는 삶에 길들여지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된다.

 

말씀이 마음에 들려지고, 말씀에 내가 수긍하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사단의 영역을 오가며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쩌면 통상적인 관념에 젖어 막연히 의인이라면서 자신에게 나타나는 흉하고 악한 모습이 볼 때 회의(懷疑)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우리의 의지로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주님 당신이 하여 주십시오 하는 나의 노력이 배제(排除)되고 주님에게 맡겨지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님이 이끌어 주신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해결은 말씀에 무조건 가까이 하려는 마음으로 옮겨진 생활이어야 한다. 인도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을 얻어야 한다. 다시 말해 말씀이 주인인 삶이야 한다. 자신에 국한된 육의 생각에서 영의 세계로 옮겨지는 것, 하나님을 얻는 길은 오직 무엇보다 먼저 “죄 사함”이다.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임을 받아들이는 은혜의 세계에 속하여야 한다.

 

눈은 영적 세계를 볼 줄 모른다.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 말씀이 주인이 되면 말씀이 소망을 이룬다.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 안에서 하나님을 도둑 맡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마음과 합했다는 것이다. 의의 옷, 예수로 옷 입은 자가 성도이다.

 

성경66권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보다 자기 형편을 매이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악임을 모르는 사람이다. 말씀만이 진실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빌립보서 제4장 13절 ;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마음의 손이 준비하는 곳이 예수님이다. 육의 생각을 받아먹다보면 영적 기능이 죽어버린다. 탐심은 우상숭배이고 자기를 섬기는 것이다. 육신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고 삶의 도구이다.

 

요한복음 제 14장 전체를 심도 있게 탐독할 필요가 있다. 요한복음 제 14장 6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