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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목사]서론, 연구사

[논문] 로마서에 나타난 율법과 복음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

김형기기자 | 기사입력 2018/11/13 [23:31]

[김은영 목사]서론, 연구사

[논문] 로마서에 나타난 율법과 복음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

김형기기자 | 입력 : 2018/11/13 [23:31]
▲ 울진한빛교회 김은영목사    

1) 전통적 견해와 그 영향


종교개혁자들이 정립한 성서 이해에 대한 영향은 오늘날 성서 신학계에까지 미치고 있다. 특히 바울의 율법 이해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은 종교개혁주의자들의 견해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율법 이해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종교개혁의 두 거성인 마틴 루터(Martin Luther)와 존 칼빈(John Calvin)에게서 발견될 수 있다.

 

루터와 칼빈은 아무도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이는 아무도 율법의 요구들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기 때문에 율법을 순종함으로써 곧 율법의 행위로는 의(justification)가 획득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4)

 

루터와 칼빈이 주장한 것은 “율법의 행위”(the work of the law)가 의식 법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이 아무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할 때 그는 전체로서의 율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그리하여 아무도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워질 수 없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5)
         
루터와 칼빈은 율법주의(legalism)를 사람이 선한 행위를 행함으로써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수 있으며, 따라서 충분한 선행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정의하였다. 결국 율법주의는 자기 숭배(self-worship)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6)

 

루터와 칼빈의 율법 이해에 대한 중대한 차이는 “율법의 제 3기능”(the third use of the law), 곧 구약성경의 도덕법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효한가 하는 문제에 있다. 루터는 구약 율법이 신약성경과 일치하는 경우에만 구속력이 있으며, 신자는 모세 율법, 심지어 도덕법에서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칼빈은 구약의 도덕법이 신자들에게 신성한 의무임을 주장하며, 이것이 율법의 제 1기능(the principal use of the law)임을 표명하였다.7)


4)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7), p. 18.
5)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p. 18-19.
6)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19.
7)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20.


칼빈에게는 구약성경의 도덕법은 구원을 얻는 수단은 아니지만,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바 구원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서 지켜야 하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종교개혁자들의 율법 이해의 영향 아래 새로운 견해가 20세기 초엽 브레데(William Wrede)와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의 저작에서 학문적 논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브레데는 바울신학의 중심은 믿음에 의한 칭의가 아니라, 그 당시 유대교에 대한 논쟁적인 반응이라고 주장하였다.8)
 
브레데는 바울이 유대교 대적자 들과 싸우는 서신들(로마서, 갈라디아서, 빌립보) 외에 이신 칭의 교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였다. 바울 신학의 실질적인 지주는 구속(redemption)에 대한 그의 종말론적 가르침이며, 이로써 인간들이 이 세대의 악한 세력들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9)
 
슈바이처의 견해는 브레데의 견해와 거의 일치한다. 즉 믿음에 의한 칭의는 바울 신학에서 단지 “보조 분화구”(subsidiary crater)에 불과하며, 종말론적 구속이 바울의 사상에서 핵심적인 요소였다고 주장한다.10)
   
브레데, 슈바이처 등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서 바울의 율법에 대한 전통적 견해 즉, 종교 개혁적 이해가 의심을 받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약학자들은 근본적으로 루터와 칼빈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종교개혁자들과 현세대 사이의 연속성은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의 저작에서 나타나고 있다.11)

 

불트만은 율법에 대한 루터의 기본적인 가르침 - 구약 율법이 신약성경과 일치하는 경우에만 구속력이 있음, 신자는 율법 · 도덕법에서도 완전히 자유로움 - 위에 실존 철학에 의해서 당시의 상황을 재조명하였다. 곧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은 자기 노력(self-effort)을 통해 안전을 얻으려고 애쓰는 인간을 나타내며, 율법을 지키려는 하는 실제적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는 악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불트만은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려고 하는 인간적인 욕망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불순한 동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이 방법이 악하다고 주장한다.12)
 
8) William Wrede, Paulus, 2d ed. (Tübingen: J. C. B. Mohr, 1907).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22. 재인용.
9)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22.
10) Albert Schweetzer, The Mysticism of Paul the Apostle (1931; repr., New York:Seabury,  1968).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22. 재인용.
11)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21.
12)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21.


불트만이 루터의 견해를 계승했다면, 찰스 크랜필드(Charles E. B. Cranfield)는 칼빈의 견해 - 구약의 도덕법이 신자들에게 신성한 의무임, 구원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서 지켜야 함 - 를 계승했다고 본다. 크랜필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율법의 역할에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은 율법에 대한 성경(갈라디아서)의 본문들을 잘못 읽은 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크랜필드는 말하기를 바울은 율법이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폐지되었음을 결코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였다. 물론 신자들은 율법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성취되었기 때문에 의식 법은 순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도덕법은 신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성령 안에서의 적절한 삶이라고 진술한다.
 
크랜필드는 율법에 대해 바울이 부정적으로 말할 때, 그것은 율법 그 자체가 아니라 율법을 왜곡하고 곡해하는 율법주의, 곧 율법에 의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율법 주의적 교훈에 대하여 공격할 뿐이라고 진술한다.13)
 

2) 샌더스의 견해와 그 영향


율법에 대한 바울의 다양한 진술들은 결국 바울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로 하여금, 바울의 율법 이해에 근본적으로 다른 해석들을 주장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바울의 율법 신학은 체계화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최근의 신약학계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나 존 칼빈(John Calvin)과 같은 종교 개혁자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해져 왔던 바울의 신학에 대해 점차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샌더스(E. P. Sanders)는 1977년에 「바울과 팔레스틴 유대교」(Paul and Palestinian Judaism)라는 저작을 세상에 내 놓았다.14)
 
샌더스의 저작의 영향은 율법에 대한 바울의 견해의 종교 개혁적 합의가 무너지도록 하였다. 샌더스는 믿음에 의한 칭의가 바울 신학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슈바이처와 견해를 같이 하였다.15)

 

샌더스는 「바울과 팔레스틴 유대교」에서, 팔레스틴 유대교를 율법 주의적 종교라고 오랫동안 확신했던 그 확고한 개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단언한다. 샌더스는 바울 당시의 유대교가 사람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는 생각은, 제 2성전 시대의 유대교 문헌을 증거로 내세우며 잘못되었음을 말한다. 오히려 바울 당시의 유대교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의 형태였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선한 행위를 행함으로써 언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과 관계를 맺으시기 전에 어떤 수준에 도달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샌더스는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야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구속 사역에 대한 응답으로 지키는 것이다. 샌더스는 결론적으로 팔레스틴 유대교는 행위의 종교가 아니라 은혜의 종교(a gracious religion)였다고 주장한다.16)
 
샌더스의 두 번째 책인 「바울, 율법, 유대 민족」(Paul, the law, and Jewish People)에서도, 그는 팔레스틴 유대교가 율법 주의적이 아님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샌더스에 의하면, 아무도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바울이 율법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바울은 구원이 이제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율법을 거부한 것이다.

 

샌더스는 바울이 “해결에서 곤경으로(solution to plight) 논증해 나간 것으로 묘사한다. 바울은 구속이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임을 믿게 되었다. 그 다음 그는 반동적으로 율법이 구원의 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17)

 

13)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23.
14) E. P. Sanders,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A Comparison of Pattern of Religion (Philadelphia: Fortress, 1977),
15)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24.
16)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p. 24-25.
17)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p. 27-28.


유대교 이해에 대한 샌더스의 패러다임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하이키 레이제넨은 「바울과 율법」(Paul and the law)이라는 저작을 내놓았다.18)
 
그러나 레이제넨은 율법에 대한 바울의 견해가 여러 가지 불일치들과 모순들에 의해 완전히 전염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바울의 율법 신학은 모순투성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밝히고 있는 모순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울은 ‘율법’(novmoς, law)이라는 단어를 일관되게 사용하지 않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율법이 전체 율법을 가리키며, 한편 다른 곳에서는 율법이 도덕법에 제한되어 있다.19)
 
둘째, 바울은 율법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신자의 삶에서 어떤 기능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롬 7:1-6; 고후 3장; 갈3장), 신자들은 율법의 규정들로부터 자유롭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면서 또한 율법을 확립시키며 신자들에게 율법을 이루고 지키라고 촉구한다(롬 8:4; 13:8-10; 고전 7:19; 갈 5:14).20)

셋째, 바울은 아무도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으며(롬 1:18-3:20; 갈 3:10), 모든 사람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데 불충분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비록 비기독교 이방인이라 해도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한다(롬 2:14-15, 26-27).21)
 
18) Heikki Räisänen, Paul and the law (Philadelphia: Fortress, 1983).
19)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29.
20)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p. 29-30.
21)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30.


넷째, 율법의 기원 및 율법과 죄와의 관련성에 대한 모순들이다. 바울은 율법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했다고 말하면서 또한 천사들에게서 유래했음을 주장한다(갈 3:19). 바울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가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임을 말하면서(롬 7:10), 하나님의 실제 의도가 죄를 가져 오는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롬 5:20; 갈3:19).22)
 
다섯째, 바울은 유대교를 율법주의적인 종교로 묘사하면서 유대교의 구원론을 왜곡시킨 한편 그는 자신의 신학을 은혜의 신학으로 묘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레이제넨은 율법에 대한 바울의 신학적 사상은 그 자신의 회심에 대한 합리화와 또한 이방인들을 율법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시킨 형태임을 주장한다.23)
 
샌더스와 레이제넨의 저작은 수많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이다. 던은 이들이 학계에 큰 공헌을 했음을 인정한다. 즉 이들은 우리로 하여금 종교 개혁적 바울 이해로부터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었으며, 또한 유대교 율법주의의 신화를 제거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던은 샌더스와 레이제넨이 바울의 율법 이해와 칭의 신학을 독단적이고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묘사한 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다. 던은 바울이 비난한 유대교의 결점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nationalism)였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백성 안에는 오직 유대인들만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만일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 속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준수하고, 유대교 음식법 및 정결 법을 준수해야만 한다는 유대교의 민족주의를 바울이 비난했다는 것이다.24)
 
결론적으로 던은 바울 신학이 팔레스틴 유대교에 대한 샌더스의 재해석의 결과로 다시금 진술되어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바울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는 폐지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25)

22)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p. 30-31.
23)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32.
24)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p. 33-34.
25)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34.

 

3) 최근의 견해

바울의 율법 이해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종교 개혁자들의 옛 견해에 타당성이 있음을 발견하는 몇 가지 반응들이 나타났다. 먼저 스티븐 웨스터홈(Stephen Westerholm)은 그의 책을 통하여 루터가 본질적으로 옳았음을 주장하고 있다. 웨스터홈은 바울이 율법과 복음은 서로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웨스터홈은 신자들이 구약 율법에서 전적으로 해방되었으며, 율법은 더 이상 신자들에게 구속력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한 샌더스의 견해를 따라 유대교가 근본적으로 율법 주의적 종교였다는 주장은 바울 서신에서 그 어떤 확고한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한다.26)
   
프랭크 틸만(Frank Thielman)도 바울이 율법주의를 반대했다는 어떤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샌더스의 논지인 그리스도가 구원의 길이기에 율법은 구원의 길이 될 수 없다는 ‘해결에서 궁지로’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실수를 범했다고 한다. 틸만은 이와는 반대로 ‘궁지에서 해결책으로’(from plight to solution)의 형태를 발견하기 위해 구약성경과 제 2성전 시대의 유대교 문헌, 그리고 바울 서신의 분석을 통해 이끌어내고 있다. 그는  바울 훨씬 이전의 유대교 문헌이 인간은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밝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무도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이 구원할 수 없음을 상당히 자연스럽게 주장했을 것이라고 본다.27)

 

티모 라토(Timo laato)는 자신의 저작인「바울과 유대교」(Paulus und das Judentnm) 28)에서, 샌더스가 매우 율법적인 유대교에 대한 풍자적인 묘사를 적절하게 비난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라토는 바울이 그의 인간론에 대한 교리에서 유대교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샌더스가 보지 못했음을 비판한다. 제2성전 시대의 유대교는 사람들이 그들의 자유의지를 행사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 능력에 대한 낙관적인 평가를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라토는 이것이 결국 유대교에서 구원론이 신인협력설 개념에 이르게 한다고 말한다.28)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율법을 지킴으로써 였다는 것이다. 라토는 말하기를 바울은 유대교의 신인협력설 신학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으며, 구원에 대한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였다.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이지 자유의지를 행사함으로써 산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토에 의하면, 바울은 유대교를 그러한 신인협력설(synergism) 때문에 율법주의로 간주하였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바울은 하나님 한 분 중심적(monergist)이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어떤 인간의 행동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생겨난다는 것이다.29)
 
최갑종은 자신의 논문인 “바울, 율법, 그리고 유대교”(Paul, the Law and Judaism)를 통하여 오늘날 가장 열띤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 곧 바울이 무엇 때문에 율법과, 율법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자기 당대 유대교를 비판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몇몇 학자들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개진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30)

 

26)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p. 39-40.
27)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41.
28) Timo Laato, Paulus und das Judentum: Anthropologische Erwägungen (Åbo: Åbo Academy Press,1991).
29) Thomas R. Schreiner, 배용덕 역, 「바울과 율법」, p 42.
30) 최갑종, “바울, 율법 그리고 유대교 ”, 「진리논단」1 (1997), p. 78.
 

그는 특히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에 대하여 유대교가 언약적 율법주의이다 라고 할지라도, 구원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을 전혀 배제하는 순수하게 하나님의 은총만을 강조하는 이상적인 언약적 율법주의인가 하는 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예수와 바울 당대의 몇몇 유대 문헌을 살펴보더라도, 그들의  주장과 달리 적어도 몇몇 그룹은 여전히 율법 주의적 자세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31)
 
또한 최갑종은 복음서와 예수 당대의 유대교 안에 “율법주의”와 “언약적 율법주의”가 함께 공존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해 줄 수 있는 본문들(눅18:9-10, 마19:16-30, 막10:17-31, 눅18:18-30, 눅 10:25)을 제시하고 있다. 최갑종은 결론적으로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근본 이유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에게만 주어져야 할 구원의 기능을 율법에게도 주는 율법 주의적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구원의 기능을 율법에 부여하는 것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과도 어긋나는 일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전 인류(유대인과 이방인)를 위해 세우신 유일한 구원의 기능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상대화시키는 것으로 바울은 이해했다는 것이다.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총만이 인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하시기 때문에 바울은 율법에 대해 부정적인 주장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32)
 

이상과 같이 학자들의 견해들을 종합해 보면 바울 당대의 유대교는, 행위를 중심한 율법주의인가 아니면 은혜를 중심한 언약적 율법주의인가의 논지가, 율법의 존폐 문제와 함께 논쟁의 중심점이라고 볼 수 있다.

31) 최갑종, “바울, 율법 그리고 유대교 ”,  p. 78.
32) 최갑종, “바울, 율법 그리고 유대교 ”,  p. 102.
 

- 목    차 -

Ⅰ. 서론
  1. 문제제기와 연구의 목적
  2. 연구의 범위와 방법 및 절차
  3. 연구사
   1) 전통적 견해와 그 영향
    2) 샌더스의 견해와 그 영향
    3) 최근의 견해
  
Ⅱ.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율법 이해
  1. 로마서에서의 율법의 위치
  2. 단어 ‘율법’(novmoς)의 사용 용례
  3. 유대인을 위한 율법
  4. 이방인을 위한 율법

Ⅲ.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복음 이해
  1. 로마서에서의 복음의 위치 
  2. 단어 ‘복음’(eὐaggevλιοn)의 사용 용례
  3. 유대인을 위한 복음
  4. 이방인을 위한 복음

Ⅳ. 로마서에 나타난 율법과 복음의 상관성
  1. 율법과 복음의 대립
    1) 구원의 능력 문제
    2) 죄악에 대항하는 능력 문제
    3) 율법과 복음의 요구 문제
  2. 율법과 복음의 통합
   1) 통합의 모델로서 아브라함
    2) 통합의 가교로서 그리스도
    3) 통합의 능력으로서 성령

Ⅴ. 결론
  1. 요약
  2. 제언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언제 어디서나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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