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은 화려하지만 가을꽃은 쓸쓸하다. 봄꽃은 함께 피고 가을꽃은 혼자 있어 그렇지 싶다. 이때쯤이면 날 좋고 분위기 좋고 다 좋지만 여자 친구 없어 미치겠다고 들짐승처럼 울부짖는 남학생을 본다. 그 남학생에게 다가간다. 가만히 물어 본다.
혹 담배 피우냐고 피운다는 답이 온다. 그러면 나는 여자 친구 없다는 것이 혹 담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하고 또 물어 본다 그 학생은 "그런 생각 못해봤는데요"라고 한다. 그러면 그런 생각 한 번 해보기 바란다라고 말해 준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어렵다는 담배 끊기를 주문하는 건 아니고 담배피우는 걸 잠시 중지해 보라는 것뿐이라는 이야기까지 해 준다,
그리고서는 사실은 나도 그전에 여자 친구가 없어 힘들어 할 때가 있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담배 피우기를 중지했더니 어느 날 여자가 생기더라는 이야기를 나지막이 해 본다. 물론 시차는 있다. 담배 중지한 건 중2 때고 여자 친구 생긴 건 늦은 대학생 때니 말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몸에 밴 담배냄새가 빠져나가는 데 필요한 시간만큼 기다리느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때 중지한 것이 지금도 중지 상태라서 그런지 여자는 저 멀리로 떠나 갈 줄을 잊었는지 아직도 곁에 서 있다는 말을 해 주면서 웃어본다.
30년도 더 전에 읽은 술고래로는 부족해서인지 꼴초이기까지 한 남자가 여자친구와의 키스맛을 달콤하게 하기 위해서 술담배를 끊었노라는 커플스(Couples)라는 존업다이크 작 소설 속의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따라다닌다.
사실 담배를 멀리하는 이에게는 구취실종은 물론 백합같이 하얀 치아에다 미각과 후각은 예민해지고 피부까지 탱탱해진다고 하니 여자친구를 기다린다면 담배를 끊는 것까지는 아니라 해도 잠시 중지해 보라는 필자의 말이 완전한 농담은 아니지 싶다.
흡연을 두고 한 쪽에서는 정신적 비타민이니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쾌락이니 혹은 완벽한 기쁨의 완벽한 형태라는 찬미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담배를 끊으면 건강은 얻지만 즐거움을 잃어버린다는 미국 식품의약국에 제출된 경제학자들의 보고서도 알고 있다.
나는 길을 가다가 갑자기 느리게 걷거나 잰걸음으로 길거리를 지나가기도 한다. 때로는 달리기까지 한다. 숨을 멈춘 채 말이다. 담배 연기를 만나는 때 말이다. 나의 약한 감각기괸이 환영을 못하니 그런 방법으로라도 견뎌 내려고 하는 것이다. 도랑이 좁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어떤 이는 담배연기를 만난다 해도 걸음을 멈추지도 달리지도 숨을 멈추지도 않고 가던 길 그대로 간다. 묵묵이 말없이 연기를 들이키며 간다. 도량이 넓은 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최근에 흡연자들의 권익보호 활동을 하는 담배소비자단체 대표가 담배를 끊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가래와 기침이 심해서가 그 이유라고 한다.
예절이란 보기에도 좋으라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대에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 싶다. 어른 앞에서 담배를 삼간다는 건 이미 고전일 테고 현대적 의미의 담배예절이란 그 연기로 인해 상대가 느끼게 될 불쾌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흡연자의 작은 몸부림이어야 하지 싶다.
사방 10미터 공간 안에 누군가 있음을 인지한 때는 그이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을 붙이는 것 혹은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그 살펴야 할 공간은 더 늘어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도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를 위한 흡연자의 작은 몸부림이지 싶다.
금연하라 마라 할 주제는 없다. 하지만 이왕 금연한다고 할 것 같으면 흡연이 나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끊을 필요가 있다거나 끊었다는 지금까지의 화두에서 향후의 문명사회에서는 그 연기로 인해 가족이나 이웃이 느낄 고통을 생각해서 끊었다는 이야기가 밤이 오면 찾아오는 별처럼 우리 곁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눈앞의 비는 잠시 우울일 수 있지만 코스모스가 뭉게구름을 만지면 나는 그윽하거나 눈꺼풀을 잠시 덮고서 찾아올 향긋한 가을바람을 살포시 안아 본다.
전정주 경북로스쿨교수 <저작권자 ⓒ 다경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전정주 칼럼 관련기사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