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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30대 후반의 호기 / 청량 이윤정

이수빈 기자 | 기사입력 2025/10/06 [14:24]

나의 30대 후반의 호기 / 청량 이윤정

이수빈 기자 | 입력 : 2025/10/06 [14:24]

[서울=다경뉴스 이수빈 기자] 나의 30대 후반엔 서울시 은평구 불광중학교 학생들에게 3년 간 매주 토요일 1시간 ( 그 때는 토요일도 등교하던 때였다) 시 창작 수업을 해 주고, 국가에서 년 700만 원씩, 3년 총 2,100만원을 받아서 이 학교에 전액 발전기금으로 기부를 했다.

 

▲ 이윤정 시인     ©

 

반듯하게 사시는 나의 족친 몇 분은 고향 모교에 매년 몇 천 만 원씩 해서 몇 억을 장학금으로 내는 분도 계신데, 그에 비하면 이 금액은 그다지 크지도 않지만, 자잘하게 몇 군데 후원금을 보내고 있었던 젊은 30대 후반인 나로써는 그 당시 가장 큰 기부액이었다.

 

나와 같이 기부를 해 주신 분은 방송국에서 그 당시 상당히 알려졌던 MC 및 방송인 한 분(남성, 박경호씨로 기억함)이 또 계시는데, 방송반을 맡아서 강의를 해 주시고, 나와 같이 전액을 기부하셨다. 나머지 토요일 주 1회 우리와 같이 외래특강 하시는 분들은 모두 집으로 연봉을 가지고 가셨다.

 

가을에 시화 전시회를 할 때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은 나의 주머니를 털어서 시화제작비용을 감당했고, 물론 달려가는 차 기름 값도 내가 감당하였다.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 발목이 잡히니 다른데 매일 출근하여야 하는 곳으로 제안이 와도 책임감 때문에 빠져서 갈 수가 없었다.

 

하여 천상 집으로 찾아오는 고교생 몇몇 개인 논술 지도만 하면서 1년만 하고 그만 두려고 했더니. 교장 선생님께서 절대 안된다고, 꼭 한 번 더, 그리고 또 꼭 1년 더, 하셔서 우리 큰 딸이 졸업하는 때까지 강의는 3년을 채우게 되었다.

 

문예반 학생 중에 가난해서 밥을 못 먹는 여자 아이가 있다고 해서 매월 30만 원 씩 지원을 해 주기도 했다. 이 학생 이야기는 예전에 긴 스토리가 있어서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것이 있기에 여기선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겠다.

 

한창 돈을 향해 달려가던 나이에 이렇게 사는 나를 놓고 집안에선 세상 물정에 어둡고, 딴 세계의 사람처럼 희안(이상)하게 산다고 한 소리들 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밥이야 먹고 살지만, 내가 여유 돈 형편이 넉넉한 사람이 아니었던 터라, 형제 부모도 이해가 안 가는 생활 방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일이 자랑스럽고, 잘 했다고 생각을 한다.

 

세상에 와서 악착 같이 돈 나오는 구멍만 팠더라면, 이 나이에 와서 가슴이 얼마나 헛헛할 것인가 싶다.

 

한참 지난 뒤에 돌아보니 남들 보다 돈 계산에는 좀 더 어리숙하게 살았던 그것만이 복이 되었고, 그것만이 진정한 시인으로 산 나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 같다.

 

한창 꿈을 꿀 때 계획했던 것들을 다 이루지 못한 이 즈음에 서서,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지는 날이 있다.

 

그러다가도 조금의 위로가 되는 부분은, 남이 보면 허세처럼 보일 만큼 , 세상과 함께 , 사람들과 함께 살고자 했던 날들이 있어서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3년이란 시간과 열정을 바친 것을 더 뿌듯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일으켜 세우는 마음의 디딤돌이 되어주곤 한다.

 

칭찬은 꼭 남이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자신이 하는 칭찬도 좋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생각한다.

 

젊어선 누가 묻지도 않는데 나서서 자랑 할 데도 없고, 이런 일을 어디다가 자랑 할려고 한 것 같아질까봐 조용히 입 다물고 있었으나, 세월도 많이 흘러갔고, 인생 뒤돌아 보면서 혹시 나중에 손주들이 읽어 보고 배우게 될지 몰라 글로 남겨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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