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국 칼럼] 잊지 말고, 속지 말고, 믿지 말자

남도국기자 | 기사입력 2019/07/25 [10:23]
▲ 남도국 세상     

1950년 6월 26일, 강웜도 남쪽 끝자락 전기도 기차도 없는 시골 마을에 열세 살 난 소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나 어렵사리 중학교에 입학하여 온갖 어려움 속에서 열심히 배우며 그런대로 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비 내리는 날 아침, 아버지와 주민들이 웅성웅성 근심꺼리가 생겨난 것처럼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린 소년도 나중에야 귀띔으로 들은 바, 어제 6월 25일 무장한 인민군대가 탱크로 무장 하고 남쪽으로 넘어오고 있고, 남한 군대는 손도 쓰지 못한 체 밀려 서울을 내 놓고 남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면사무소 행정 전화를 통하여 전해들은 부정확한 소식이라 이를 믿어야 할지 아니면 어찌 할 바를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될 테면 되라, 어떻게든 될 테지 생각하며 지내든 다음 날,

 

소문이 현실로, 동해안 지역을 밀고 온 인민군대가 사흘 만에 울진 지역에 발을 들여 놓았다 했다. 공무원이나 부락민들은 그들의 총칼 앞에 충성해야 했으며 주민에 거슬리게 살아오든 사람들과 가족들은 피난하는 게 옳다는 권유의 말이 설득력을 얻었다.

 

스스로 우파로 생각하며 살든 사람들과 가족들은 모두 이부자리, 식 거리, 귀중품, 마구간의 소 까지도 몰고 무거운 짐 보따리 등에 지고 도보로 남행길에 올랐다.

 

걸어서 가면 얼마를 가겠나? 북한에서, 서울에서 경기도, 충청 전라, 강원도 등지에서 내려온 많은 피난민들은 낙동강을 경계로 방어진을 치고 있는 대구와 부산으로 몰려와 잠자리를 펴며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마구간도 처마 밑도 좋았다. 힘든 노동일도 마다않고 밥만 먹여주면 모진 생명을 이어갈 수 있어 고맙게 받아들였으며, 부산 자갈치 시장과 대구 중심가는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하늘의 도우심으로 그런 일 생긴지 3개월 만에 서울을 유엔군과 아군의 특별 작전으로 탈환하게 되었다. 남쪽으로 멀리 내려온 인민군대는 남한 군대에 허리를 점령당하여 보급품과 전쟁 물자를 지원받지 못하므로 북으로 도주하지도 못하고 지리산과 태백산 깊은 곳에 숨어살며 밤이면 인근 주민 집으로 내려가 먹을 것을 빼앗아 달아나곤 하였다. 이들이 바로 빨치산 공비들이었다.

 

나라의 치안과 질서는 물론 엉망이었고, 우군이든 적이든 밉게만 보이면 총으로 갈기고 도망가면 끝이었다. 소년도 수없이 많은 죽은 시체와 사살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하였다.

 

밀고 밀리고를 수십 수백 번이나 거듭 하면서 많은 한국군, 유엔군, 인민군, 중공군 등의 목숨을 앗아간 한국 전역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전쟁은 유엔의 중재로 1953년 전쟁 발발 3년 만에 휴전 협정으로 끝이 났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과 소련의 스탈린 강대국 대통령들이 서명하는 휴전 협정이 마련되었다. 이 전쟁으로 약 100만 여 명의 한국 및 유엔군이 사망하였고 수십만의 포로와 실종자, 또 수십만의 아버지를 잃은 고아와 남편을 잃은 과부가 생겨났다.

 

전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도시의 건물도 산속의 문화제 까지도 쓸 만하고 귀중한 재산은 모두 폭격과 화재로 불타고 잿더미로 변하였다. 국가는 먹고 살기에 힘들었고 유엔의 원조, 쌀과 밀, 옥수수, 감자, 의류품 등을 받아 연명하며 살았다.

 

이는 모든 것을 주도한 미국의 원조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그들의 귀한 외아들 까지 한국전쟁에서 희생 시켰고, 수많은 또 다른 아들들을 통하여 우방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접목한 은혜의 수호자들이다.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무너져가는 나라를 살리고, 굶고 허기진 우방을 살리고 돕기 위하여 구호품을 싫어 보내고 헌혈하고 입양하고 결혼 까지 하면서 우리 대한민국을 오늘에 이르기 까지 돌보아 준 그들이 바로 보은의 나라다.

 

일본은, 한국 전쟁을 이용하여 부자가 되었다. 한국 전쟁을 이용하여 자국의 생산품을 고가로 팔아 이득을 챙긴 약삭빠른 나라다. 한국 전쟁으로 일본은 세계 제1의 부자 나라로 급부상하였다. 일제 물품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미국을 압도하며 일본의 우수성을 세계에 선전하며 자랑하게 된 계기로 만들어 갔다.

 

한국의 휴전 협정은 그 후로 잘 지켜지지 않았고, 70 여 년 간 아픔과 고통과 시련의 연속을 맛보며 살아왔다. 협정은 어느 한편이 준수하지 않으면 가치와 효용이 없는 것, 북한은 휴전 협정 후에도 수많은 위반을 저질러오며 어수룩하고 분망한 남한에 고통과 슬픔을 안겨 주었다.

 

70 여 년의 휴전 기간, 북에서 도발한 휴전 위반 사항 수 십 차례, 수많은 인명, 재산, 아픔과 고통의 피해를 체험하면서 우리는 살아온다. 기억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만 간단하게 기억해 봐도, 북의 특수 임무를 띤 김 현희씨, 그는 북한에서 특수 훈련을 받은 특수 간첩요원으로, 유럽에서 우리 국적기 대한항공에 일본인 탑승자로 가장 하여 탑승 후, 여객기에 시한폭탄을 설치하고 다음 기착지에서 내린다. 대한항공은 서울을 향해 비행 해 오든 중 공중 폭파되어 200 명이 넘는 승객전원이 목숨을 잃은 적 있다.

 

밤중에 서해상에서 임무를 수행을 하든 천안함 해군 함대에 북이 지뢰 공격을 가하여 46인의 해군 장병들의 목숨을 빼앗은 사건과, 평화스런 연평도 주민들의 마을에 장사포를 발사하여 애꿎은 민간인들을 살상하여 피해를 입힌 사건은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동해상에서 임무 수행중이든 미국 프에볼로 해군함대를 북한 특수 대원들이 납치하여 끌고 가 고통을 준 사건,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호국 영령들을 추모하려든 순간 북한 공작대가 설치한 폭발물에 의해 희생당한 한국의 외무부 장관 일행 9명의 희생 된 사건, 울진 삼척 지역에 특수 공작대원 20 명을 소형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주민들을 살상하며 정부를 교란시키려 한 사건, 김 신조를 포함한 특수부대원 30여 명을 태백산맥을 도보로 넘어오게 하여 대 낮에 남한의 청와대에 아군으로 위장하여 보도로 침입하려다 들킨 사건, 판문점 미군 장교를 북한군 일행이 도끼로 찍어 죽인 사건 등등.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정치에 소속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우리 시대의 숙명적인 과제가 또 있다고 생각한다. 김 대중 전 대통령과 노 무현 대통령이 가짜 평화에 속아 북에다 전달해 준 돈이 도대체 얼마인가? 그 돈으로 핵무기와 미사일,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어 오늘 날 우리들의 목숨과 체제를 위협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를 이 밝은 세상에 제시해 주길 부탁한다. 그분들의 일부 참모와 보좌들이 아직도 우리 정치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하늘을 우러러 양심적 애국심으로 사실을 밝혀 주시고 역사에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명확한 사실을 기록하는 나라다운 나라 우리 함께 만들어 가자고 제의한다.

 

지구촌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공산주의 체제의 나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산체제로 흡수시켜 통일을 이룩하고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북한, 지난 70 여 년간, 삼대가 이어온 그 역사가 이제는 종말의 신호가 보이고 나타나는 걸 감지한다.

 

지도자들이 정말 국가와 국민의 발전과 상생을 위한 먼 안목을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 다시는 전철의 아픈 상처를 대 물림하지 않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팩트를 열어가는 지도자를 앞세우고, 모든 국민이 그분을 믿고 따르며 신의 축복을 받을만한 참 아름다운 나라 우리 조국이 세워지기를 소원한다. 근대 70 년의 우리 조국 대한민국 역사는 고통과 눈물, 얼룩진 미움과 갈등의 싸움판 역사였음을 우리 모두 잊지 말고. 속지 말고, 믿지 말고 함께 에너지를 합하며 더 이상 흩어지지 않는 나라 만들어 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가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십시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