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귀향은 그냥 영화가 아니다.
필자는 지난 주말 가슴을 짓누르는 위안부 귀향을 보고 몇 자 남기고자 한다. 지난해 말 한-일 양국은 외교장관회의에서 위안부 문제를 마무리 짓기로 합의했다. 살아 숨쉬는 위안부 문제를 박제로 만들려 한 셈이다. 지난해 9월 한-일 관계의 재조명을 주제로 세미나가 열린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 전문가인 정진성 서울대 교수는 단언했다. 위안부 문제는 결코 덮을 수 없다‘고. 최근 태국에서 나이-이름 등이 상세히 적힌 위안부 명단이 나오는 등 앞으로도 중국-일본-미국-영국 등지에서 무궁무진한 자료가 쏟아질 텐데 어떻게 막겠느냐‘는 얘기였다.
1943년,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 가족의 품을 떠난 열네 살 소녀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그린 귀향은 7만 5천명이 넘는 국내외 각지의 시민 후원으로 제작되었으며 개봉 후 돌풍을 일으키며 연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객석이 조용할 수 없었다. 일본군이 정민의 집에 들이닥쳐 있을 때였다. 멀리서 다가오는 정민을 본 부모님은 손사래를 치지만, 정민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집안으로 들어온다. 하나뿐인 딸은 그렇게 일본군의 손에 이끌려 집을 떠났다. 영화 귀향의 한 장면이다. 평일 낮 시간대 극장은 평균 40대 정도 연령층의 관객이 객석을 메웠다.
50대 이상의 연령층을 가진 분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극장을 홀로 찾은 관객도 있었다. 한 아주머니 관객은 같이 온 친구에게 나 벌써 세 번째 난다. 보통 극장은 젊은 층이 주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귀향의 상영관 극장을 메운 이들에게 귀향은 그냥 영화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영화의 처음 등장하는 위안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자막이 나온 그 순간부터 그랬을지 모른다. 위안부는 역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다. 다들 알고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아픔에 가까이 다가가기는 힘들다. 귀향에도 등장했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그런 걸 스스로 밝히겠냐는 것이 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인식 중 하나였다.
그런 분위기에 당사인 할머니는 내가 그 미친년이다‘라고 외친다. 숨겨야 할 과거가 아니다.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과거다. 귀향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현재 할머니와 1943년, 위안부가 된 정민의 이야기를 오가면서 보여준다. 정민은 집에서 사랑받는 하나뿐인 외동딸이다. 엄마는 정민이 그저 곱게 크기만을 바란다. 정민을 강아지라고 부르는 아빠는 마중 나온 딸을 지게에 태워서 집에 데려가는 딸 바보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오열로 바뀐다. 일본군의 손에 끌려가는 딸에게 쥐어 줄 것은 액운을 떨쳐줄 괴불 노리개뿐이다. 귀향 상영관에서 안타까운 함성은 계속됐다.
고향을 떠나 정민과 영희가 당도한 곳은 중국 길림성이었다. 그곳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는 시작된다. 일본군은 소녀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 일본군은 황국의 암캐라고 말한다. 군용 침대 하나 달랑 있는 방 안에서 소녀들은 10분 간격으로 군인을 들인다. 비명과 더러운 신음이 공간 안에 가득 찬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는 이야기다. 다만 정확히 알지 못하고, 또 그렇게 되기에 마주 보기 힘든 이야기일 뿐이다. 위안부 문제는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귀향을 보면서 다 같이 큰 공포를 느끼는 것, 그리고 안타까움에 큰 한숨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대낮의 극장에서 마냥 조용하게 볼 수 없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영화-소설-연극-만화 등 온갖 위안부 관련 창작물도 계속 불꽃을 태울 것이다. 영화 귀향에서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이 학살당하는 장면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만 피해자가 아니다. 조상들이 억지로 끌려가 능욕 당했는데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아파하는 우리 후손들 역시 피해자다. 아무리 정부가 끝냈다고 주장한들 제2의 귀향이 만들어져 상영되면 또 민족 감정이 분출될 게 분명하다. 위안부 문제는 과거사가 아니다. 아베 신조 정권이 강제동원을 부정한다는 사실조차 현재진행형인 위안부 역사의 한 자락이다.
지난해 위안부 문제가 일단락됐다고는 하나 일본 정치인의 망언은 이어진다. 일본 정부의 지원금 10억 엔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는 형국이다. 2016년 3/1절도 막 지났다. 이제 어쩔 건지 냉정하게 돌이켜 볼 적기다. <저작권자 ⓒ 다경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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